슬로우 웨스트, 낭만적, 정적, 성공적 영화


###약간의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온전한 감정으로 영화를 보고싶으신 분들은 영화를 먼저 보고 이 리뷰를 읽어주세요!



난 서부극을 좋아하는 편이다. [놈놈놈], [3:10 투 유마],[장고:분노의 추적자], [론 레인저] 등등. 열성적인 서부극 팬은 아니지만, 서부극 특유의 분위기가 맘에 든다. 탁 트인 광야, 흙먼지 날리는 폐허같은 마을, 카우보이틱한 옷차림, 장총 또는 권총, 자유로워보이지만 무법천지인 시대,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


통쾌하고 오락적인 서부극이든, 조용하고 진지한 서부극이든 앞에 말한 요소들은 다 가지고 있다. 차이점이라면 영화를 이끄는 힘이다. [장고]나 [놈놈놈] 같은 서부극의 힘은 복수를 이루거나 보물을 찾는 쾌감에서 나온다. 주인공은 기본적으로 껄렁하고 시크하다. 그리고 방해하는 악역들과 총과 폭탄으로 피터지게 싸운다. 영상과 음악은 그런 이야기에 맞춰 빠르고 긴장되게 다듬어져 까리해진다. 감정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하고, 마지막까지 심장이 뛴다.


이와 반대로, 조용하고 진지한 서부극의 힘은 이야기의 울림이다. 물론 오락적인 서부극처럼 총과 폭탄으로 사람을 죽이고, 광야를 지나거나 황량한 마을에서 결투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쾌감이 아니라 이야기다. 진지한 이야기일수록 영상과 음악은 차분해지고, 감정은 박하사탕 입에 문 듯 차갑게 확 퍼진다.  [3:10 투 유마]가 그런 서부극이었다. 지금 내가 리뷰하려는 [슬로우 웨스트]도 그런 서부극이다.


일단 이야기를 보자면, '제이'라는 16살 스코틀랜드 소년이 미국 서부로 간 '로즈'라는 여자친구를 찾기위해 미국 서부로 갔고, 그 와중에 '사일러스'라는 무법자를 만나 같이 '로즈'를 찾으러 가는 이야기다. 벌써부터 낭만적이다! 16살의 사랑이라면 첫사랑일테고, 첫사랑을 찾아 스코틀랜드에서 미국 서부까지 갔다!  '제이' 자체도 낭만적이고 순수한 영혼이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별자리를 읆고, [이랴! 미국 서부로 가는 길]이라는 모험서 비슷한 책과 나침반을 가지고 미국 서부를 향하는, 어찌보면 바보같이 순수하고 낭만적인 소년인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제이는 사일러스를 만나기 전까진 낭만적이고 순수하기만 한 소년이었다.


제이는 순진한 소년이었다. 제이와 사일러스는 교역소를 발견하고,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쉴 겸해서 교역소로 들어간다. 이때, 사일러스는 제이가 찾는 로즈라는 소녀가 사실 그녀의 아버지와 함께 현상금 2000달러가 걸려있단 사실을 알게 된다. 사일러스는 제이가 수배전단을 볼까봐 일단 수배전단을 떼는데, 이때 한 남자가 교역소를 나선다. 남자는 전단을 들고있는 사일러스를 쳐다보고, 사일러스도 그 남자를 쳐다본다. 남자는 이내 고개를 까딱이고 제 갈길을 가고, 사일러스는 일단 제이와 계속 같이 다니기로 결정한다. 


제이와 사일러스는 교역소에 들어와 음식을 사고, 잠깐 휴식을 취한다. 그런데 교역소에 초췌한 몰골의 부부가 들어오더니, 이내 강도로 돌변한다. 이들 부부는 딱 봐도 돈과 식량이 필요해보이는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교역소 주인도 그걸 알고 있었고, 대화로 설득하려 한다. 그러나 결국 남편 강도와 교역소 주인은 서로가 쏜 총에 맞아 죽고, 아내 강도만 남아 겁에 질린 채 사일러스에게 총을 겨눈다. 제이는 사일러스의 도움을 받아 그녀를 죽이고, 생애 첫 살인을 저지른다. 제이는 많이 당황해하지만 사일러스는 무덤덤하고, 이내 식량과 필요한 물품, 돈을 챙겨 교역소를 나선다.


교역소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제이는 한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를 본다. 그 아이들은 부부 강도의 자식들이었던 것이다. 사색이 된 제이를 보고 여자아이는 말한다. "왜 얼굴이 슬퍼보이는 거에요?" 사일러스는 그만 떠나자 말하고, 제이는 자신이 챙긴 식량과 물품을 아이들에게 주고 교역소를 떠난다.


이 일이 있은 후 제이는 살인에 무덤덤한 사일러스가 꺼려지고, 결국 사일러스가 자고있는 틈을 타 혼자 길을 떠난다. 혼자 길을 떠난 제이는 베르너라는 남자를 만나고, 베르너는 제이가 순진한 소년임을 알고 그에게 호의를 베푼다. 다음날 제이는 담요와 달걀, 약간의 돈 빼고 모든 걸 잃어버린다. 베르너는 제이가 자고 있는 틈을 타 제이의 말과 물품들을 모두 가져간 것이다. 


제이는 망연자실한 채 드넓은 광야를 걷다가 사일러스를 만난다. 사일러스는 제이의 말과 물품들을 가지고 있었고, 제이는 사일러스에게 베르너를 죽였냐고 물어본다. 사일러스는 죽일 이유가 없으니 안죽였다고 말하고, 제이는 남은 돈 전부를 사일러스에게 주며 데려가달라고 말하고, 다시 제이는 사일러스와 다닌다.


사일러스는 말이 적은 사내였다. 제이가 하는 말에 대부분 "아무렴, 꼬마야(Sure, kid.)"이라고 말했고, 필요한 말만 했다. 입에서는 시가가 떠나지 않는, 마초적인 사내였다. 그렇지만 좋은 사람이기도 했다. 제이는 순진한 소년이었고, 서부에서 온전히 살아남기 힘들었다. 사일러스는 그런 소년을 데리고 다니며 서부에서 해야하는 처세술을 말하기도 하고, 지켜주기도 하고, 제이의 사정을 듣고 난 후 자신이 제이를 데리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순수한 소년의 사랑을 지켜줄 것인지, 아니면 소년을 이용해 돈을 챙길지 갈등한다.


사실 사일러스는 무법자였지만, 살아남는 것이 삶의 가장 큰 목표였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부모님을 잃고 무법자 갱에 들어간 사일러스는 세상이 무섭고 잔인한 곳이라 느꼈고, 갱을 떠나 독립적으로 살아가면서 살아남기위해 부던히도 노력했다. 다물때 다물고 떠벌릴 때 떠벌리고, 지나갈 때 지나가는 게 그의 사는 방식이었다. 


그러던 중 사일러스는 인디언을 사냥하는 미군을 봤고, 그 미군 중 한 사람이 한 소년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을 봤다. 사일러스는 그 미군을 죽였고, 소년을 구해줬다. 제이는 그렇게 사일러스를 만났고, 사일러스는 제이에게 돈을 받는 대신 서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기로 한 것이다. 그런 사일러스 앞에, 다시 예전 갱 두목 '페인'이 나타나고, 다시 같이 일하자고 제안한다. 페인의 갱 목표도 로즈 부녀였고, 그걸 알게 된 사일러스는 제이에게 그만 집에 가라고 말한다.


당연히 제이는 그럴 수 없다. 로즈를 찾아 행복하게 사는 것이 그의 소망이기 때문이다. 사실 제이는 스코틀랜드에서 귀족집안의 자제였다. 로즈는 그냥 농민의 딸이었고, 제이를 그저 친한 동생으로 보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제이의 삼촌 '캐번디시 경'이 로즈와 같이 있는 제이를 찾으러 오고, 제이가 로즈와 같이 있겠다고 말하자 로즈의 싸대기를 날려버린다(!!). 로즈의 아버지는 순간 분노해 캐번디시 경을 밀쳐버리고, 캐번디시 경은 바닥에 있던 돌에 머리를 찧어 죽어버린다.


결국 로즈 부녀는 스코틀랜드를 떠나 미국 서부로 도망치고, 제이는 이게 다 자기 때문이라며 자책하다가 서부로 온 것이었다. 제이에게 로즈를 찾는 여정은 속죄의 길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랑의 뒤에는 죄책감이 있었던 것이었다. 사일러스는 그런 제이의 속사정까지는 모르지만, 제이의 순수하고도 끈질긴 사랑에 마음을 정한다. 제이와 사일러스는 로즈를 찾기위해 떠나고, '페인 갱'은 그 뒤를 쫓는다. 과연, 제이는 무사히 자신의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결말은 상당히 충격적인데, 꼭 영화로 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결말을 적지 않았다. 위의 이야기는 서부극의 전형에서 약간 비튼 것이라 봐도 좋을 만큼 전형적이다. 보물(로즈)을 찾으러 가는 순진한 사람(제이), 그를 도와주는 카우보이(사일러스), 그를 쫓는 갱들(페인), 그리고 그들이 보물을 찾으러 가면서 벌어지는 비정하고 숨막히는 이야기들. [슬로우 웨스트]는 이런 서부극 이야기를 독특하게 풀어낸다. 카메라는 매우 정적으로 움직이고, 음악도 잔잔하다. 기타 하나, 또는 젬베 하나, 목소리 하나로 이뤄진 음악은 제이와 사일러스의 여정을 덤덤하게 바라본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했다. 서부극은 배신과 아이러니가 난무하는 장르라서, 오히려 잔잔한 카메라 움직임과 깔끔한 편집, 음악이 별로 없는 편이 더 긴장되었다. 언제 어디서 총소리가 날 지 모른다는 건 정말 긴장되는 일이다. 누군가 죽는다는 것도 그렇고.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결말 부분은 그나마 긴장이 덜했다. 대신 감정이 확 일었다. [그래비티]와 비슷했고, [3:10 투 유마]와는 또 달랐다.


[슬로우 웨스트]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힘은 묵직하다. 구원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순수함과 현실적임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과연 순수함과 현실적인 것은 따로 노는 걸까? 글쎄, 아니라고 본다. 현실적인 사람도 순수할 수 있다. 순수하다는 건 자신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실을 인정한답시고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그리고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 진짜 타락한 것이다.


현실은 때론 잔인하다. 자기 자신은 그저 살아온 대로, 살고 싶은 대로, 또는 살아남은 것일 뿐인데, 결과는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의도는 좋았는데 현실이 시궁창일때도 있고, 현실은 좋은데 의도가 시궁창일 경우도 있고, 정말 여러가지 변수가 있다. 어쨌든, 영화에서 말하는 답은 '살아남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이다. 서부극에서 이런 얘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


분명 더 나은 삶이 있고, 더 괜찮은 선택이 있다. 솔직히 사람은 무조건 더 나은 것만 선택하지는 않는 것 같다. '더 나은 것' 보다는 '더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기도 한다. 요즘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럼 '더 좋아하는 것'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사랑도 그렇고, 앞으로 개척해나갈 미래도 그렇다. 이런 생각까지 들고 나니, [슬로우 웨스트]는 낭만적인 영화인 것 같다. 낭만 자체는 현실을 바꿀 수 없지만, 낭만적으로 살려는 의지는 현실을 바꿀 수도 있다.




'살아남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제이 캐번디시가 그걸 나에게 가르쳐줬다.', [슬로우 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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